전공 선택

斷想/雜談 : 2009. 6. 30. 14:43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꽤 빨리 전공 선택을 강요하는 것 같다.
고2 때 벌써 문/이과를 선택해야하고 -물론 교차지원 (요새는 없어졌나?)라던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 원서 쓸 때, 18살 짜리가, -물론 이것도 전과, 편입, 복수전공 등으로 변경하여 원하는 공부로 바꿔할 수 있지만- 전공을 골라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 -개인적으로 장사하는 사람이라던지-이 50%가 넘던가 그 근처라던가 하는 기사를 봤던 기억으로는 그렇게 선택한 정공이 평생의 업이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대학이 공부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취업을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 -마치 중학교 들어가려면 초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하듯이-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평생에 가장 흥미있어 보이는 학문, 또는 인생을 투자해서(?) 배워보고픈 학문을 18살 짜리한테 결정하라고 하는 제도는 조금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동문회 가서 늘 느끼는 거지만, -물론 나도 그랬지만- 그러한 이유였으면 재료과 오는 건 아니지, 싶은 이유로 재료과를 온 -구체적으로 밝히면 화학에 몸 담았던- 후배들을 보면서 그냥 문득 들은 생각이다.

내 고3시절, 전공을 정하던 때를 돌이켜 보면, 정말 대책없이 공부 안 했던 고2 시절 을 마치고 도박 성격이었지만, IChO 대표도 떨어지고, 그 많던 경시대회 응시 횟수 중 남은 경시대회 기회는 단 한번. 발등에 불이 떨어지긴 했는데... 고2 때를 교훈 삼아 교내대회 통과하는데는 전력을 다 해서 쓸데없이-_- 1등으로 통과하긴 했다만,(오박사가 시험을 안 보셨던가...뭐 하튼 IChO 나가셔야 하는 오박사의 묵인 덕에) 서울, 전국 대회는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 안 했던 것도 사실이고, 정확히 동상 꼴찌 턱걸이. 내 밑에 일반고 TO 한 자리, 그 밑에는 우수상. 그렇게 아슬아슬, 스릴 만점이던 여름 방학을 넘긴 고3 2학기는.... ㅎㅎㅎ

그리고 어느새 수시 원서 써야 될 때가 되어서 원서를 앞에 두고 잠시 고민. 사실 고민할 새도 없었다. 자기소개서니 뭐니 글짓기 해야 되는 것들이 많아서... 내가 또 작문 실력이 워낙-_- 유달리 바닥이어서 고생 좀 했다. 뭐 그래도 엄마 친구분의 시동생인 그 해 새로 부임한 국어 선생님이 가르치지도 않는 고3 자기소개서를 한 통 손 봐주신 덕에.. ^^;; 조금 수월히. 원서 빈칸에 과를 적어 넣으라는 데가 있었는데 그건 상당히 뒷전...이었더랬다. 사실 붙는게 먼저잖어.

3년을 지지고 볶았던 화학은 왠지 익숙해서 싫었다. 다른 게 해보고 싶었다. 3년간 경시대회 통해 나름(?) 화학의 쓴 맛은 볼만큼 봤다고 여겨졌고. 물리와 수학은 별천지이므로 패스. 생물은 생물 선생이 싫어서 패스. 따라서 공대로 방향을 잡고 화학과와 같은 이유로 화공과 탈락. 전자과는 그 때 무슨 이유로 탈락 시켰더라? 뭐 하튼 탈락. 기계과는 선반이나 만지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탈락. 조선과는 아버지가 말리셔서 탈락. 컴공은 컴터가 취미로 갖구 노는 거니 재미있지 업으로 삼으면 재미 없어질꺼라 탈락. 그래도 재료과는 화학이랑 연관성도 있어 보이고(사실 그닥.. 관계 없다) 딱히 말리는 사람도 없고-_- 기타등등 해서 오게 되었... 더랬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전과할 기회도 있었고, 내가 의지만 있었으면 하면 되었지만, 안 했다. 귀찮아서. 사실 그 때 했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으리.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옆에서 경제학 좀 해보라고 누가 꼬셨으면... 왜 교양을 경제학/경영학 원론을 안 듣고 심리학을 들어서 아예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심리학도 재미있게 들었기에는 후회는 없다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경제 쪽은 아쉽다. 사실 농생대에서 열리는 미시경제학이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듣자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의 멘트가 "수학을 좀 써야 되는 경제학이어서 -맞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문과생들보다 이과생이 유리해" 였기에.... 수학을 싫어하는 나로써는 저 문구를 통해 경제학 교양을 하나 들어? 라는 고민을 했다기 보다 수학을 하나 교양으로 들어? 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어서, 역시 나는 수학은 싫어였기 때문에 안 들었더랬다... 친구가 좀 괜찮은 멘트로 꼬셨어야 하는데... 수학과 녀석이다 보니 과학고 나오면 다 수학 잘하고 좋아하는 줄 아는 엄청난 단점이 있다; 요새 들어 경제 관련 글들이나 교양 서적들 보다 보면 경제학을 배워두지 못한 게 좀 많이 아쉽다. 꽤 재미있더라고.

하튼 쓰고 싶은 글은...
학생 선발은 알아서 하고 -입시제도는 내가 알 바 아니고- 1학년 지나서 단과대 고르고, 2학년 지나서 전공 고르는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의대 법대는 이제 전문대학원으로 방향 틀었으니... 문과는 모르겠고, 의전 때문에 자연대 생물학과가 인기가 좀 많겠군.. 생물과 랩은 썰렁하겠고.. ㄷㄷㄷ

서론이 길었는데... 서론이 9할 본론이 1할도 안 되네;
하튼 18살 짜리한테 전공 고르라고 하는 건 우습다고. 남자의 경우 군대까지 다녀오면... 23살.  전공 골라보라고 하기엔 여전히 어리긴 어리구나-_-a 쩝;; 18살이나 20, 21살이나 전공 고를 만큼 본인 주제 파악하고, 학문 전반에 대한 식견을 갖긴 부족한건 마찬가지네-_-a

에라, 그럼 결론 바꿔서 그냥 전공 선택은 어른들 말씀 귀 담아 듣자. 근데 보통 부모님은 자식 주제 파악을 오버 or 언더 에스티메이트 하는 경향이 강하니.. (그리고 재미없고, 돈 잘 버는 거 or 괜찮은 직종을 추천 해주시는 경향이 강하시다. 특히 어머님들이) 본인 주제 파악 잘 하고. 이게 재미있겠다 하고 고르는 거... 낚시질이 상당히 강한데... 엄한 거에 안 낚이도록 주의. 이건 본인 문제.

"모르면 선배한테 물어라..." <= 사실 이거 한 마디는 하고 싶었어.

친구들한테 물어봤자, 니나 나나.

+)
동문회 가서 후배들이랑 얘기하다가, 결국 자문(?)을 해주다가, 또 다른 선배의 얘길 듣다가 다시금 내 선택의 문제로 돌아와서 랩 선정의 내 나름의 원칙을 다시금 상기해 보면서... 나도 박사주제라는 짧게는 향후 5년, 길게는 평생 갈 선택의 기로에 있는 데 말야...
그냥 역시 과 동문회가 좋은 이유가 있긴 있다.


Posted by Q1